이제는 실존하지 않는 AI 모델들이 런웨이에 서고, 브랜드의 얼굴이 되는 시대입니다. 릴 미켈라(Lil Miquela), 슈두(Shudu) 같은 버추얼 인플루언서들이 패션계에서 어떤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지, 브랜드들이 이들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 흐름이 향후 패션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정리해보았습니다.
AI 모델,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실존하지 않는 모델이 패션 광고를 장식하고, 수백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다는 게 처음엔 생소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이 흐름은 꽤 오래전부터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죠.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릴 미켈라(Lil Miquela)"입니다. 2016년 인스타그램에 처음 등장한 그녀는 브라질계 미국인 소녀 콘셉트의 3D 그래픽 기반 버추얼 인플루언서로, 뮤직비디오도 찍고 인터뷰도 진행하며 점점 현실 세계 속 유명인처럼 활동 범위를 넓혀갔습니다.
릴 미켈라는 프라다, 샤넬 같은 하이엔드 브랜드 캠페인에도 등장했고, 2020년에는 켈빈 클라인과 벨라 하디드가 함께한 광고에서 등장하면서 대중적인 관심을 확 끌어모았습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진지하게 질문하기 시작했죠. "이 모델은 실제 사람이 아니야?"
비슷한 시기, 세계 최초의 흑인 버추얼 슈퍼모델인 슈두(Shudu)도 등장합니다. 영국의 디지털 아티스트 캐머런 제임스 윌슨(Cameron-James Wilson)이 만든 이 모델은 마치 현실 세계의 슈퍼모델처럼 완벽한 피부와 포즈로 패션계를 사로잡았고, 리한나의 Fenty Beauty 광고에 등장해 대중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AI 모델의 등장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실제 패션 산업 안에서 소비자와 소통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버추얼 모델이 각광받는 이유는?
그렇다면 왜 실존하지 않는 모델들이 이렇게까지 패션업계에서 인기를 끌게 된 걸까요? 그 이유는 생각보다 꽤 현실적입니다.
우선 첫 번째 이유는 '브랜드 관리의 용이성'입니다.
버추얼 모델은 실수가 없고, 스캔들이 없습니다. 인성 논란, 계약 분쟁, 갑작스런 이미지 손상 같은 리스크가 거의 없다는 점은 브랜드 입장에서 상당히 큰 장점이죠. 실제로 릴 미켈라는 꾸준히 브랜드 캠페인을 이어오면서도 단 한 번의 논란 없이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브랜드 정체성 맞춤 제작'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실제 모델과 달리, AI 모델은 브랜드의 방향성과 미학에 따라 외모, 스타일, 포즈까지 세밀하게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슈두는 디지털 블랙 뷰티의 상징으로 브랜드가 보여주고자 하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강조하는 데 적합한 캐릭터로 선택된 것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메타버스와의 연결성'입니다.
디지털 공간에서 활동하는 이 모델들은 메타버스, 가상 패션쇼, NFT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실제로 릴 미켈라는 메타버스 공간에서 팬과의 인터랙션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버추얼 의상을 착용한 NFT 기반 캠페인에도 참여했습니다. 놀랍게도 이 과정에서 많은 브랜드들이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창출하고 있죠.
눈여겨볼 점은, 이 모델들이 Z세대, 알파세대와의 소통에 매우 효과적이라는 겁니다. 디지털 세계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이런 가상의 존재를 오히려 더 신선하게 받아들이고, 친근하게 느낍니다. 현실보다 더 리얼한 가상, 이게 지금 세대에겐 더 매력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패션계에 미칠 영향과 우리가 고민할 점들
이제는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서, 버추얼 모델이 패션계의 일부로 정착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 기술이 가져올 장점만큼,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부분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선, 실제 인간 모델들의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버추얼 모델이 늘어날수록 신인 모델들의 설 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실제로 일부 브랜드에서는 인간 모델 없이 전면 디지털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AI 모델이 표현하는 외모나 신체 이미지가 특정 기준을 강화할 수 있다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완벽하게 조각된 얼굴, 군더더기 없는 몸매는 현실의 다양성을 왜곡할 수 있다는 지적이죠. 패션이 포용성과 다양성을 외치는 시대에, AI 모델이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은 충분히 고민해볼 문제입니다.
재밌는 점은, 일부 브랜드들이 이를 인식하고, 의도적으로 '비완벽한' 디지털 캐릭터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주근깨, 비대칭적인 얼굴, 다양한 체형 등을 반영한 새로운 AI 모델들이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는 건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현실보다 영향력 큰 가상, 우리는 준비됐을까?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버추얼 패션 모델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패션 산업 전반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브랜드는 더욱 전략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고, 소비자는 새로운 방식으로 패션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윤리적, 사회적 고민도 깊어지는 시점입니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지만, 그 안에서 인간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버추얼 모델과 공존하며, 이 기술이 패션 산업을 보다 다양하고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이끄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나가야 할 것입니다.